환자와 공감하고 이해하는 모습이 인기 비결


모든 미용 시술은 ‘과거’라는 단어로 통한다고 한다. 미백은 어릴 적 깨끗하고 뽀얀 피부로, 리프팅은 젊은 시절의 탄력 있는 피부로, 나아가 비만 치료도 살이 찌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가기 위함이니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예쁜 것보다 늙은 것 같지 않은 ‘방부제 미모’를 가장 부러워한다는 설문 결과가 있었다. 동안 메이크업이 꾸준히 인기를 끄는 것과 세월이 흘러도 얼굴이 그대로인 것 같은 연예인들의 관리 비결이 연관 검색어에 진득하게 머무는 것도 사람들의 어려보이고 싶은 욕망,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더 어렸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 때문일 것이다.


이상영 원장은 모두가 동안이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미로 ‘동안세상’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이상영 원장이 병원 이름을 ‘동안세상’이라 지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동안을 꿈꾸는 사람이 많은 만큼 모두가 동안이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 원장이 꿈꾸는 동안은 막연하게 어려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클릭]



다정함과 편안한 진료 분위기로 다시 내원하는 고객 많아


친절이 명의라고 하던가. 능력도 중요하지만, 요즘엔 친절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의사를 선호한다고 한다. 의사와 환자 간 끈끈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만난 메디캐슬의원 장호선 원장이 딱 그러했다. 막 들어온 환자와 친숙한 듯 “어우, 오늘 피부가….”로 시작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로비에 놓은 꽃과 벽에 건 그림, 심지어 직접 담근 김치와 장아찌까지 선물로 받았다며 환자들 자랑을 하던 그녀는 “제가 이렇게 환자들이랑 행복하게 살아요”하고 웃기도 했다. 사진을 찍으려 꺼낸 카메라를 보고 화장을 안 해서 부끄럽다 하면서도 “피부 하난 좋은 것 같지 않느냐”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 금세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메디케슬의원 로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장호선 원장


원래 그녀의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길을 걸을 때마다 음표가 머릿속에 한가득 피어나 쏟아질 정도로 음악과 피아노를 좋아했다. 당연히 음대에 진학하겠거니 했지만, 고등학교 때 백혈병에 걸린 후배를 만난 후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돕고 싶단 꿈을 꾸게 됐고 그 꿈은 그녀를 의대로 이끌었다.


그녀는 매년 필리핀 세부에서 영양이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하며 도움을 주고 있다. 아이들이 건강한 상태로 공부할 수 있게 건강 교육과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또한, 일 년에 한 번, 국내 복지원에서 캐럴을 연주하거나 음식을 나눠 먹고 춤을 춰주는 등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어주는 봉사도 하고 있다. 그녀가 의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봉사활동이라고 한다.


“그 친구들은 눈빛에서 절절하게 도움이 필요한 것이 보인다. 진료하고 복도를 지나갈 때, 90도로 몸을 숙이며 ‘Thank You Doc.’이라고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그 낭랑한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듣고 나면 그때의 여운이 3개월은 떠나지 않는다.”


이런 그녀의 선행은 아이들에 그치지 않는다...[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클릭]


소프트필, 윈도우테크닉 시술의 개발로 대한민국 미용치료 역사에 기여


요즘 40대 혹은 50대까지 바짝 일하고, 60대부터는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홍경태 원장은 여전히, 진료실에서 100명 이상의 피부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진료실을 지킨다. 실력과 성실함을 탑재한 피부연구가, 스포츠카 페라리 같이 저돌적이면서도 여전히 산을 동경하는 홍 원장을, 그의 진료실에서 처음 만났다. 


홍경태 원장은 ‘소프트필’과 ‘윈도우테크닉’이라는 시술을 개발한 것으로 의사들 사이에서는 매우 유명하다.


기미 치료에 사용되는 ‘소프트필’은 홍원장이 1997년 1천 케이스사례를 발표했고, 당시 김주하, 엄기영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9시 뉴스에 소프트필이 소개되면서 소위 ‘대박’ 난 시술법이다.


집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던 그는 전액 대출을 내어 피부과를 개원했다. “분유값 벌고 밥 먹고 살자니 독기가 생기더라. 30평에서 한 달에 150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혼자 300명까지 본 적도 있다.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고 진료했다. 6개월 만에 빚 갚고 집사고 1년 후부터 벌기 시작했다”고 지난 시절을 회상한다. 


그러던 홍 원장은 2004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죽다 살아났다. 암벽등반을 즐기며 의대 총동창 산악회 등반대장을 12년 동안 했고, 피부과 의사회, 고교 동창회에서 산악회도 만들었던 그였지만, 병원 오픈 후 10년 동안 환자 보느라 밥 못 먹고 화장실 못가고 저녁엔 고단함을 풀기 위해 술만 미친 듯 먹다 보니 몸이 고장 난 것이었다...[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클릭]


섬세한 치료와 세심한 친절함으로 고객만족도 높아


대한민국에서, 또한 세계적으로도 SNS가 더욱 활성화되면서 외모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진 요즘. 더욱 많은 사람들이 성형외과를 찾지만, 여성 성형외과 전문의를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봄햇살이 상큼한 늦은 오후 부산 서면에 위치한 비바성형외과에서 구수한 부산 사투리와 유창한 영어를 번갈아 구사하는 송제니퍼김 원장을 만났다.


비바성형외과 데스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송제니퍼김 원장


그녀는 미국에서 태어나 부모님과 함께 미국과 부산을 오가며 자랐다. 49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어머니의 분만을 도왔던 미국인 의사의 이름을, 어머니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딸의 이름으로 삼았다. 그래서일까. 초등학교 3학년 때 화상을 당해 눈꺼풀이 붙어버린 친구가 성형수술로 눈을 뜬 것에 강한 인상을 받은 송 원장은 성형외과 의사가 되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이뤘다.

 

“성형이 인간에게 생명 외에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린 시절 알게 되었다. 내 손으로 다른 사람에게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에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이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분야라 더욱 그랬다. 일반적으로 지식에는 ‘약으로 이런 상황에 이런 약을 써서 치료가 된다’는 공식이 있다. 물론, 성형에도 반드시 기본적인 의료지식이 필요하다. 다만 여기에 에스테틱한 안목도 가미되어야 하고, 조직을 다룰 수 있는 스킬도 더 필요하다. 스킬을 아는 것과 그걸 실제로 할 수 있는 테크닉이 손에 있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녀는 좋은 의사라면 마땅히 더욱 질 높은 진료를 위해 배움의 열정이 마르지 않아야한다고 강조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클릭]



환자에겐 잘 들어주는 의사, 의사에겐 실 리프팅 권위자


무더운 한여름에 이사 갈 집을 보러 가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계약 성사율을 높인다고 한다. 연세팜스의원의 윤정현 원장이 지금의 자리(서울 은평구)에 병원을 개원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눈이 펑펑 내린 다음 날, 뻥 뚫린 전면 유리창을 통해 본 눈 덮인 북한산 봉우리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이처럼 작지만 마음을 툭, 건드리는 요소들이 삶의 판도를 뒤흔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도 난데없는 산자락의 모습에 끌려 병원 입지를 결정했지만, 지금 보면 여기서 안 했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이곳의 환자들과 찰떡궁합을 보여준다.


윤정현 원장의 진료실은 각종 서적과 상패들로 빼곡하다.


동네를 걷다 우연히 마주친 환자들이 증상이 심해졌다며 서슴없이 팔을 걷어 올려 보여주기도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환자가 윤 원장의 배를 툭 치며 ‘살 좀 빼야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심지어 원장의 핸드폰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는 환자들도 있다.

이처럼 스스럼없는 친근한 의사지만, 그를 두 마디로 표현하면 국내 유력 미용의료 학회 중 하나인 '대한미용성형레이저의학회'의 회장이자 '실 리프팅'의 대가이다. 이렇게 말하니 범접할 수 없는 존재 같다. 하지만 윤 원장은 짐짓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아래 링크에서 기사 계속]



MBTI 성격유형검사 하면 ‘호기심 많은 학구파’가 나올 것 같다


다른 의사들의 추천으로 방문하는 환자들이 많다. 그만큼 인정받는 쁘띠성형의 대가지만 그 뒤엔 엄청난 연구와 노력이 있었다.

“늘 자기 분야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10-20년의 공부가 모여 좋은 의사가 된다. 이 분야에 있는 한, 고뇌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여서 성형외과 의사가 되었다. 안면기형 수술의 대가, 구순구개열 수술의 대가 등 훌륭한 스승님 밑에서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성형외과 전문의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대가'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대가'의 길을 따르고 싶다는 고익수 원장의 열정이 발현된 지점이었다.

"그리고 그분들에게 배우면서 책에 나온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단지 십여 년간 전해져 온 수술 방법에 약간의 변형만 가하는 수준이 아니다. 성형외과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그가 특히 빠져있는 분야는 쁘띠성형. 시술 과정이나 회복 속도는 다른 수술보다 훨씬 빠르지만 똑같은 주사기여도 의료진의 기술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이다. 깊이, 위치를 면밀히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주사를 아프지 않게 놓는 수준이 아니라, 주사 하나로 ‘병자도 일으키는’ 수준만큼의 편차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 쁘띠성형은 소위 ‘미끼상품’이나 값싼 시술로 전락하면서 소비자들에게도 ‘별 것 아닌’ 것처럼 각인되어버렸다. 사실, 알면 알수록 방대하고 파면 팔수록 끝이 없다. 내과 의사가 감기를 보듯 쁘띠성형은 성형외과, 피부과 의사들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술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러한 가치관을 활용하여 더욱 많은 의사들이 쁘띠성형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으면 하는 마음에 학회까지 만들었다. 바로 쁘띠성형학회(APAS – APAS Congress)...[아래 링크에서 기사 계속]



‘서비스’가 아닌 ‘팩트’를 추구한다, 인성일 원장


우선, 인터뷰는 고난이도였다. 모든 질문에 ‘에이, 그런 게 따로 어디 있어요’라고 반문하는 모습을 보며 한 가지 질문에도 스무 가지 대답을 내놓는 여느 의사들과는 스타일이 다르구나 싶었다. 그러나 대화를 진행할수록 신념 하나만큼은 또렷한 의사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정직함을 통해 환자들의 프로페셔널 어시스턴트를 자처하겠다는 맑은참피부과 인성일 원장

인성일 원장이 운영하는 맑은참피부과는 최근 서울 강남 신논현역에서 교대역으로 이전했다. 면적은 작아졌지만, 덕분에 환자들의 동선을 고려한 효율적인 인테리어를 고안해낼 수 있었단다.

“예전에는 원장별로 진료실이 따로 있었다면, 이번엔 진료실과 상담실을 합쳐서 공유하는 형태로 만들었다. 환자들의 동선을 최소화하고 오픈마인드로 다가가겠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기존의 진료실은 답답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피부과 특성상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할 일은 많지 않기 때문에 더 가볍게 상담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진료실뿐만 아니라 병원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한결 산뜻해졌다. 요즘 병원 인테리어 트렌드라는 ‘카페 스타일’이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탁 트이는 전망과 잔잔히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 친절한 직원들. 분명 서비스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데도, 인성일 원장은 “우리도 서비스가 뛰어난 건 아니다. 의료에서 서비스는 부수적인 것일 뿐, 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팩트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며 본질을 강조했다. 이 정도의 서비스가 신경 쓴 게 아니라면, 신경 쓰는 의료의 본질은 얼마나 완벽한 것일까?



한 우물만 파는 200%의 전문성, 고우석 원장


전 진료과목을 포괄하여 다양한 고객층의 니즈를 아우르는 병원이 있는 반면, 한 분야만 전문적으로 고집해 타깃은 좁혀지더라도 최상의 치료 결과를 내 환자 만족도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병원이 있다. 고우석 원장의 고우석JMO피부과는 후자에 속한다. 고 원장은 한 가지 분야에만 집중하는 이유에 대해 “단기적인 수익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그 분야에 견고한 전문성을 갖겠다는 신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성을 통해 장기적인 신뢰를 쌓겠다는 것이 고우석 원장의 신념이다

제모 시술만을 고집한 지도 어느새 20년. 고우석 원장은 서울대병원 피부과 레지던트 시절부터 레이저 기기를 연구하면서 제모에 대한 관심을 가져왔다. 그 집념은 미국 유학으로까지 이어졌고, 다양한 치료용 레이저를 연구 및 개발을 하는 하버드대학 부설 웰만연구소에서 제모용 레이저 기기 개발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이후 2001년부터 국내에 제모 전문 피부과를 개원하면서 미용 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특화 병원을 시작했다. 또한 업계 최초로 제모 부위를 40여 군데로 세분화했다. 털의 색이나 굵기, 자라는 속도 등 부위별 특성을 고려하여 합리적인 비용 체계를 만든 것. 암암리에 가격 흥정을 하는 병원들과는 다르게 시술 가격 정찰제를 시작했다. 세부적인 시술 가격은 병원 홈페이지에 명시되어 있다.
시술 부위도 다양해지고 있다. 팔, 다리, 겨드랑이, 비키니라인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수염 제모를 하러 오는 남성 고객들도 많아졌다.



‘원장님’보다는 ‘교수님’이 잘 어울리는 의사, 강원형 원장


20여 평 규모의 아담한 병원, 하루 4시간 남짓의 짧은 진료시간, 한번 쓰기 시작하면 10년은 거뜬히 가는 ‘장수’ 장비들…. 작지만 옹골찬 병원, 광화문에 위치한 큐피부과이다.
이 작은 병원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너댓 명의 의사들이 찾아온다. 강원형 원장의 ‘색소교실’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그는 올해 3월부터 색소 치료 강연과 Live 시연을 접목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다섯 명의 소수 정원만을 모집해 장비를 활용한 근본적인 색소 질환 치료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의사를 가르치는 의사’라는 그의 수식어와도 꼭 맞는 행보다.

지난 4월 진행된 색소교실 2기, 참가자들 앞에서 강연하고 있는 강원형 원장의 모습
사실 그는 ‘개원의’보다는 ‘교수’로서의 인생이 더 길었다. 피부과 전공 후, 잠시 개원을 했다가 아주대 병원에서 교수 생활을 거쳐 다시 한번 개원을 한 뒤, 관동대 피부과 교수로 재직했다. 지금의 큐피부과는 8년 전 개원한 병원이다.

“첫 개원을 했을 때 기미에 대한 환자들의 수요가 높다는 걸 알고 자세하게 연구해보려 했지만 당시 저명한 피부과 교과서에는 기미에 대해 딱 한 페이지 나와 있는 정도였다.”

그렇게 색소 연구에 대해 갈증을 가질 무렵, 당시 아주대 이성낙 학장의 권유로 아주대 피부과 과장이 되어 그토록 바라던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다.

“기미에 대한 기초 정보가 부족해서 조직검사를 많이 했다. 처음에는 고작 색소 치료한다고 흉터를 만들어가며 살점을 떼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스트레스가 심한 기미 환자들의 확실한 치료 여부를 결판내는 일이 더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가 아주대 과장을 지내면서 바꿔놓은 건 기미 연구 기반을 탄탄히 다져놓은 점뿐만이 아니었다. 의과대학의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제도들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당직을 윗연차와 아랫연차 구분 없이 공평하게 설 수 있도록 바꿨다. 또 퇴근 시간이 다 지나도록 전공의들을 쓸데없이 붙잡아놓던 비효율성도 나무랐다. 이건 엄연한 불법 행위다. 과장 회의에서 전공의들을 다섯 시 반 이후로 근무하게 하려면 내 허락을 받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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